사랑과 가난은 숨길 수 없다던데. 그러면 지창민이 숨길 수 있는 건 대체 뭐지. 곰팡이 눅진 천장이 하늘인 이 단칸방을 숨길 수 있는지. 철장이 쳐져 있는 창문 틈의 소박한 살림살이를 숨길 수 있는지. 물기 찬 습습한 방 안의 공기를 숨길 수 있는지. 옷에 짙게 벤 나프탈렌 냄새를 숨길 수 있는지. 그것도 아니면 이재현을 쳐다보는 눈동자를 숨길 수 있는지....
김영훈이 제 빚을 다 갚았다. 지창민은 눈앞에 있는 김영훈을 빤히 쳐다봤다. 키가 커서 목을 좀 꺾어야 그의 얼굴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. 한낮의 태양을 머금은 아스팔트 바닥이 뜨겁다. 지창민은 지금 제 발밑이 불구덩이인지 도심 속 아스팔트 위인지 헷갈린다. 김영훈이 천진하게 웃는다. 지창민은 정숙하게 뒤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다. 망설임 없이 차도로 ...
지창민은 종종 호흡하는 법을 잊는다. 그럴 때마다 마포대교로 뛰어가 난간에 몸을 잔뜩 기대고 늘어진다. 오 년도 넘게 부른 그 이름 고래고래 소리치다 잔뜩 울어버린다. 울음과 함께 호흡한다. 사람들은 이걸 주사라고 불렀고 지창민은 병이라 칭했고 이재현은, 이재현은 그냥 난간에 매달린 걔 끌어다가 옆구리에 끼고 니가 돌고래냐. 물었다. 혈중 알코올 농도 지창...
김선우가 누나들 용돈 뺏는 깡패마냥 열 살 차이 나는 누나들 쇼핑백이나 들어줄 때 개한심하다는 눈빛 대신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는 이주연 때문에. 김선우는 오늘도 혀 깨물고 뒤질까 고민했다. 밥 안 먹었으면 사주겠다고 덧붙이는 그 말에 차도로 뛰어들까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그냥, 누나가 사줬어요. 했다. 그러면 이주연은 푸른빛 띠는 제 머리나 긁적이며 그래 선...
창민아 나 사실 도깨비야. 개소리하지 마요. 야 형한테 개소리라니. 이재현이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. 지창민은 기가 찼다. 형 왜 나한테 그런 말 해요? 그냥 너한테 말하고 싶어서. 수줍은 이재현 표정 보고 지창민은 단박에 인상을 구겼다. 내 앞에서 그런 표정 짓지 마요. 도깨비와 고백 도깨비 가문 구십칠 대 후손이란다. 지창민이 아무리 전 세계 호러영화 ...
형 오늘 헤어질래요? 또 떡볶이 먹냐 밥 좀 먹어. 아니면 내일 헤어질까요? 너 이게 첫 끼야? 형. 내일모레. ... 내일모레에 다시 얘기해. 이별 미학 이재현의 하루일과. 아침에 눈 뜨자마자 지창민한테 전화하기. 당연히 안 받음. 그러면 부랴부랴 옷 입고 비니 눌러쓰고 지창민이 사는 옥탑방으로 가기. 이재현의 자취방에서 지창민의 옥탑방까지는 걸어서 대충...
이재현은 남들 놀이터에서 놀 때 까만 기름 낀 시멘트 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렀다. 두 손으로 묵직한 연장 들고 시멘트 바닥 뛰 다니면 엄마는 나무랐고 아버지는 그냥 웃었다. 가게 자주 오는 삼촌들은 저놈 새끼 지 애비 닮아서 기술로 먹고 살려보다 그랬다. 엄마는 그 소리를 경기 일으킬 정도로 싫어했다. 아버지는 기름때 묻은 손으로 새까만 이재현의 뒤통수를 쓰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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